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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과 역설/본질과 깨달음 3

by 북스메리 2022. 4. 8.

책 표지

'통찰과 역설' 이 책은 저자가 17년 동안 수행했던 기나긴 세월을 통해 '대자연의 위대한 법칙'의 깨달음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통찰'의 정의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다. '역설'의 정의는 어떤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이나 말을 뜻한 다. 사람마다 각자 살아가는 인생관과 거기에 이르는 생각들이 다르다. 저자의 인생관에서 얻은 통찰들은 진리에 가까워 보인다. 그 진리를 통해 우리 인생에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사람의 에너지는 사람으로부터 얻는다

첫째, '타인에게 칭찬을 아끼지 말라.'이다. 우리 몸속에는 '엔도르핀'이라는 화학물질이 있다.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듣게 되면 '엔도르핀'이 나오게 되고 이것이 활동성 에너지로 변하게 된다. 오죽하면 '고래도 칭찬을 들으면 춤을 춘다.'라고 하지 않는가.

둘째, '타인에게 사랑을 아끼지 말라.'이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사랑이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감정의 동물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원초적인 힘은 결국 '사랑'에서부터 흘러나온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끌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셋째, '타인에게 먼저 베풀어라.'이다. 동물들도 잘 대해주는 사람을 따르듯이 사람도 실수하고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잘 보듬어주고 베풀면 따르기 마련이다. 먼저 베풀지도 않으면서 타인에게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건 애초부터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타인을 절대 적으로 만들지 마라.'이다. 적은 항상 적의를 품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적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타인을 미워하거나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적일지라도 그의 입장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적의 에너지는 분명히 내게로 온다.

다섯째, '타인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라.'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다. 간단하게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다. 당장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 모든 사람이 쓰레기를 하나씩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순식간에 악취가 들끓는 쓰레기장이 될 것이다. 내가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행위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깨끗한 이유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사회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데 이처럼 내가 타인을 사랑하면 타인도 나를 사랑한다.

 

운명을 바꾸려면 좋은 인연을 만나라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려면 자신도 열심히 공부하고 마음을 닦아서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한갓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여기에서'배운다'는 의미는 열심히 공부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자신의 마음을 닦아서 '인성을 바르게 하라.'는 뜻이다. 무슨 일이든 깊이 생각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배운 사람이다. 그런데 수학 한 문제 더 잘 푼다고, 영어 한 줄 더 안다고 허세를 부리는 젊은이들이 가끔 있다. 심지어 부모가 못 배웠다고 무시하는 자식들도 있다. 그런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을 지금껏 나는 본 적이 없다. 설령, 출세한다고 해도 이내 나락으로 떨어진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됨이다. 지식이 많다고 성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형제와 남을 존중하는 사람이 더 크게 성공한다. 말하자면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바른 인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비록 남들보다 출발이 조금 늦어도 결국에는 더 크게 성공한다는 것이 바로 대자연의 이치다. 늦다고 해서 실망해서는 안 된다. 이를 깨우치지 못하면 아무리 배웠다고 해도 말짱 도루묵이 되기 쉽다.

 

밥은 왜 먹는가?

원래부터 정신이 깨어 있는 인간은 항상 배움에 허기를 느낀다. 그들은 날마다 책 속의 지식을 먹고 산다. 그러니 정신은 늘 풍요로다. 소크라테스가 '배부른 돼지보다 굶주린 인간이 더 낫다.'라고 했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진리에 대한 강한 욕구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겨우 백 년도 되지 않는 삶을 그저 먹고 싸고 재물만 탐하는 인간 돼지는 되지 말자. 만약 당신이 돼지처럼 산다면 내생에도 돼지로 태어날 것이다. 그게 당신의 '업보'이다.

 

인복이 진짜 많은 사람은 자신이 삶의 중심을 잃고 헤멜 때 바른 길을 가라고 귀싸대기를 올려서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그런 이가 곁에 많은 사람이다. 말하자면 자신에게 삶의 길을 올바르게 갈 수 있도록 깨우침을 주는 사람이 진짜 구세주라는 것이다. 도움은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나 한 번이면 족하다. 힘들다고 해서 자꾸 도와주는 이는 자신을 오히려 절벽으로 밀어내는 사람이다. 내 말의 요지는 지혜와 지성을 갖춘 사람만이 많은 '인복'을 타고난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것의 진짜 의미는 '사람에게서 배우고, 사람에 의해 깨닫고, 사람에 의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는 것이다. 지금은 사람과 사람이 초현실적으로 연결된 '커넥트 파워' 시대이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 한 사람이 수만 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누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한눈에 다 보인다는 뜻이다. 이런 시대에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 성공하기 쉽다. 반대로 나쁜 사람들에 의해 사기를 당하기도 쉽다. 하지만 이 또한 자신이 만든 인연의 결과물로서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자신의 주변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는 것도 다 자신의 그릇에 의해 결정된다는 얘기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인복'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인복'을 얻으려면 본성은 선하되, 항상 깊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내가 힘들 때 용기를 주고 질책하는 이가 곁에 많다면 그는 진실로 인복이 많은 사람이지만, 반대로 힘들 때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내가 삶의 진리를 깨칠 수 있는 기회를 막고 오히려 화를 던져 주는 사람이다. 술을 사주거나 선물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스스로 인복이 많다고 착각하지 마라.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내가 극복할 수 있도록 곁에서 현명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이가 주변에 많은 사람이 진짜 인복이 있는 사람이다. 착한 것은 그저 착한 것일 뿐, 그것이 바른 길은 아니다. 착한 것과 바른 것을 바르게 보고 판단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답은 선함을 잃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생각과 사고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잘못된 종교적 가르침들도 이제는 바 꺼야 한다. 진정한 도움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신적인 가르침에 있다.

 

이렇듯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최고의 깨달음이 얻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깨달음에는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외람되게도 깨달음이라고 하니까 붓다라든지 아미타 부처라든지 부처의 깨달음을 생각하지만 절대로 아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깨달음은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충실하게 하는 걸 말한다. 붓다는 붓다의 깨달음이 있듯이 소상인은 소상인의 깨달음을 가져야 하고 노동자는 노동자의 깨달음을 가져야 한다. 선생은 선생으로서의 깨달음을 가져야 하고, 부모는 부모의 깨달음을 가져야 한다. 대통령의 깨달음과 노동자의 깨달음은 다르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지듯이 자신의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으면 된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 있는 본분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본분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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